지호준 2011. 10. 29 – 11. 26

지호준 – COIN INVASION

2011. 10. 29 – 11. 26

 

 

 

Beyond Truth

절대성을 넘어서

“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 가 주장했던 것처럼 순수한 눈은 존재하지 않는다. 눈은 항상 과거의 것을 보고 과거와 이전 것들에 매료되며 귀, 코, 혀, 손가락, 심장, 뇌의 새로운 암시를 받는다. 눈은 독립적인 체제의 활동이 아닌 복잡하고도 변덕스러운 생물체의 일부분이다. 그것은 보는 것만이 아닌 어떻게 보는가 또한 필요와 편견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다.” Nelson Goodman, Languages of Art (Indianapolis: Hackett, 1976 ) p.7

우리는 대상이 낯설게 보이면 그것이 진실이 아닌 허구라고 간주하기 쉽다. 보는 행위는 사회적 약속과 훈련을 통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익숙한 것, 미리 익힌 것만이 진실이라고 여기게 된다. 보는 것은 곧 사고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주지하듯이 기술의 발전은 보는 영역을 확대시켰고 이는 사고의 확장과 함께 미감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사진은 육안으로 보는 것 이상을 보여준다. 지호준은 우리의 시지각을 확장시키기 위해 카메라의 렌즈, 나아가 현미경의 렌즈를 통해 가장 작은 단위의 보기 행위 즉 확대촬영으로 대상에 접근을 시도해오고 있다. 이는 대상에 대한 새로운 체험 방식의 제시로서 우리가 결코 인식할 수 없는 세계를 드러내면서 익숙한 현실을 낯설게 만든다.

지호준이 광학현미경을 통해 마이크로 단위로 재현한 동전은 평범한 일상물을 하나의 거대한 조각으로 보이게끔 한다. 그는 광학현미경을 통해 본 동전의 미세한 부분들을 한 장 한 장 이어 붙여 인쇄 시 화질이 손상되지 않는 최대 사이즈로 하나의 큰 동전을 만들어 내었다. 약 150~300배로 확대되어 육안으로 보기 힘든 미세한 기스들과 녹슨 부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동전은 거대한 원형 조형물에 날카로운 조각도로 파낸 듯한 흔적처럼 보이기도 하고 거대한 동상의 부식된 부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낯선 세계로의 진입은 그를 또 다른 세계로의 침투로 이끌었다. 그는 동전 속의 테마가 그것을 발행한 한 국가의 대표적 이념 혹은 역사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대상이라는 점에서 이에 기반한 가상 스토리를 구상했다. 동전 속 인물이 본다면 묘하거나 혹은 감동적일 수 있는 사건의 기사가 담긴 신문을 중첩(Overlap)시킴으로써 시공을 초월한 순간을 주선한 것이 그 예이다. Coin Invasion 이라는 제목은 동전이 시공을 초월하여 침투 한다는 의미에서 비롯한다.

그는 극사실주의 회화가 실제와 닮게 그렸지만 기계의 눈을 통해 본 실제와는 다르다는 점을 드러내어 예술적 가상이 주는 환상을 깨버린 후 기계로서 또 다른 가상을 설정하고 있다. 이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주목한 점 – 기술 복제된 영상은 실제를 뛰어넘는 리얼함을 보게 해주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 자체를 하나의 미감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한편 지호준의 미시세계 탐구의 첫 시작인 나노그라피(Nanography) 연작에서 행해졌던 전자현미경의 나노단위 촬영은 이번 동전 작업에도 이어졌다. 동전의 나노입자는 동전이 해체된 영상으로 실제를 상상하기 어려운 형상을 띤다. 리얼하게 재현된 동전과 전혀 실재 같지 않은 화면의 중첩은 가시세계와 미시세계를 극단적으로 연결시켜 육안으로 보는 행위의 한계를 자극하고, 자연물 형상의 나노입자는 인공물에 감춰진 아름다운 자연세계를 그려보게 한다. 이러한 효과는 그가 현미경으로 재현한 세계가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하는 맥락으로 이해되어져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지호준이 미시세계 탐구를 통해 던지는 화두는 절대적 진실의 부재이다. 우리가 보는 것이 모두 진실일까? 예컨대, 극사실화로 동전이 표현되었을 때 그것은 실재처럼 보이기 때문에 경탄을 자아낼 것이다. 그러나 광학현미경을 통해 만들어낸 동전과 비교해보면 전자가 사실이라고 믿을 수 없게 된다. 게다가 미래에 현재의 광학현미경의 기술이 발전하여 더 정교한 다른 형상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지금 지호준이 촬영한 동전 또한 실재라고 정의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인간이 진실을 알고자 하는 집착은 본능적 욕망이지만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만이 존재할 뿐 절대적 진실은 잡지 못한 채 욕망은 계속해서 미끄러진다. 다시 말해, 닮음(ressemblance)만이 있을 뿐 사물의 진실은 계속 유예된다. 지호준은 대상을 극도로 확대하여 미처 몰랐던 진실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이는 사실 절대적 진실이란 정의내릴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대상의 본질, 원형에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인간 시각의 불완전성을 지적하고 또 다른 보기의 방식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의 작품들 속 닮은꼴들이 이루는 가상 놀이에 참여하는 것은 절대적 진실을 초월하여 기술을 통한 시대적 미감을 비평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눈은 선택하고, 거절하고, 정리하고, 편의하고, 관련시키고, 분리하고, 분석하고, 구성한다. 눈은 받아들이고 만드는 일에서 거울만큼 하지 못한다. 눈은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음식 · 사람 · 별 · 적 · 무기 등으로 본다.”

Information

+ 전시회: COIN INVASION

+ 일시: 10월 29일 — 11월 26일 (화~금 — 10am ~ 6pm / 토, 일 — 10am~5pm / 월, 공휴일 — 휴관)

+ 장소: 진화랑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7-35)

 

 

 

 

 

 

 

Category
2011, Exhibi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