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숙 2012. 09. 19 – 10. 20
한희숙 – Healing Diary
2012. 09. 19 – 10. 20
힐링 다이어리
– 일상의 탐미를 통한 치유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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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힐링의 시대’다. 이는 개인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대현상에서 비롯한다. 자기 자신의 진정한 행복 찾기에 집중하다 보니 이제 힐링은 삶의 으뜸가는 주제이자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자리잡게 된 것 같다. 힐링의 의미를 되짚어 보자면, 요즘 인기리에 방영중인 SBS 프로그램 <힐링캠프>를 떠올리면 쉽게 참고가 된다. 힐링캠프는 초대손님이 자신의 아픔과 좋은 추억을 함께 쏟아내게 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구체적으로는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시간, 나쁜 기억과 좋은 기억을 회상하며 울고 웃는 시간, 그것을 통해 자신 인생의 향방을 깨닫게 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보듬어 주게 하며, 그렇게 자신을 아꼈을 때 행복해지는 느낌을 찾게 함으로써 힐링의 효과를 증명한다. 이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사실은 사람들은 보통 행복을 자기 외부세계에서 찾고자 하다가 결국 자기내부는 공허해지고, 이것은 외부와의 소통 실패로 이어져 크게 절망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자기 자신과의 교감을 즐길 수 있을 때 타인과의 소통도 즐길 수 있고, 그렇게 쌓인 경험은 결국 자신과 세상에 대한 포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삶에서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자기 만족과 소통의 원활함 아닌가.
힐링은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혹은 여행이나 산행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힐링을 가능케하는 요소 중 우리가까이에 항상 있어왔던 또 하나는 바로 예술이다. 시, 음악, 미술은 언제나 주변에 존재하면서 힐링의 역할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히 예술은 경제적 행위에 유용하지 않다는 이유로 삶의 여정에 큰 가치가 없는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생산적 삶을 위해 외부의 물질세계를 채우는 것에만 몰두하다 보면 결국 정신적 피로가 극에 달하면서 삶의 풍요를 느끼는 감성의 기능이 마비된다. 평소에 예술로부터 감성충전을 적절히 해주는 것은 하나의 힐링 행위로서 우리의 영혼이 병들지 않는 길이다.
이번 전시는 25년 가까이 시, 소설, 영화, 음악, 미술로 자신의 영혼을 치유해 나가려 부단히 노력했던 한희숙 작가의 예술적 삶을 총망라하여 보여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그녀의 삶을 엿보면 일상의 단편적 순간들을 예술로 승화시킨 시간의 흔적들로 가득한데 이는 힐링의 방법을 찾는 이들에게 특별한 감흥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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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숙의 작업은 회화뿐 아니라 그릇 또는 돌기와에 미니어처를 콜라주 하거나, 나무로 조각이나 가구를 만들어 페인팅과 오브제 콜라주(object collage)를 하는 등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결과물의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버려진 물건에서 시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희숙은 우리나라의 안면도, 남해부터 그리스의 산토리니(Santorini), 이집트의 나일강과 룩소르(Luxor) 등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의 해안과 마을을 돌아다니며 조개나 전복껍데기, 산호, 깨진 유리조각, 호스 등 버려진 물건들을 수집해왔다. 그의 수집품에는 희귀한 자개나 수정, 돌, 종이, 천, 미니어처 등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의 엔틱 시장에서 선택되어 온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해안가에서 수집한 물건들은 모두 세상에 하나뿐이며, 오랜 세월 동안 세찬바람과 바닷물결, 모래의 쓸림을 이겨낸 화석과도 같은 것이다. 작가는 그 재료를 다시 마모시키거나 염색하기도 하고 새로 칠을 입혀서 재탄생 시킨 후 전혀 물성이 다른 개별 매체들을 한 화면에 조합 한다. 세월의 흔적과 작가의 손때가 함께 묻어나는 오브제들은 작가 내면의 이야기가 덧입혀 지면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묘한 매력의 물질로 변모된다. 조개껍데기를 비롯한 오브제들은 그녀의 추억, 향수, 아픔, 판타지를 담는 그릇으로서 의미를 품게 되는데 이로 인해 희소성이 극대화되고, 볼 때마다 아련한 추억이 되살아나게 함으로 영원성을 부여 받는다.
한희숙은 연상작용으로 작품 창작을 이끌어 가고, 작품 앞에서 느끼게 되는 감성 또한 연상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한다. 그녀는 평소 시나 소설을 읽거나 영화나 음악을 감상한 후 생겨나는 감성 – 욕망, 향수, 현실의 처절함, 꿈에 대한 판타지 – 을 작품화 시켜왔다. 감성이라는 비물질적 요소를 시각화한다는 것은 추상적 형상으로 나타나게 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가슴에 품고 표현한 추상이기에 작품들은 분명 어떤 연상작용을 일으키고, 정서적으로 공감하게끔 한다.
회화에 오브제가 콜라주 되어있는 작품을 보면 그 어떤 요소도 정형화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떠도는 듯, 부유하는 듯, 몽환적인 듯, 중첩되는 듯한 비정형의 추상이다. 이는 삶의 잔상(殘像)을 끊임없이 시적 은유(詩的 隱喩)로 옮겨내고자 하는 의지에서 연유한다. 시의 은유성은 시시각각 변하는 비정형적인 인간 내면의 풍경을 담아내기에 좋은 수단이다. 시에서 사용된 단어나 문장은 읽는 이의 연상작용에 따라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듯 그녀가 그림으로 쓴 시에 등장하는 오브제나 표면처리, 구성방식은 여러갈래로 연상을 뻗어나갈 수 있게 만든다. 여러색이 겹치면서 생성되는 색감과 마티에르는 기억이 중첩되면서 번져나가는 그리움의 깊이라던가 상상이 넘나들며 생겨나는 감정변화의 굴곡같은 것을 전달한다. 여기에는 무엇이든지 인연이 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하는 작가의 삶의 철학이 스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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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숙 작품의 주제는 자신이 일상에서 받은 감동- 반가움, 그리움, 기쁨, 슬픔, 부끄러움, 초라함 등-을 어떻게 은유적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는가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 은유적 표현은 자신과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픈 “삶에 대한 미적 충동” 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