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호, 김도희 2인전 2015. 11. 21 – 12. 13

강석호, 김도희 2인전 – Limit and Condition 한계와 조건

2015. 11. 21 – 12. 13

 

 

2015년 11월, 진화랑은 이 시대를 함께 살아 간다는 것이 진귀한 두 명의 존재를 소개합니다.

강석호의 <Trans-Society project>는 장장 5년에 걸친 연구의 결과물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책의 정보가 저자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의해 지워지는 과정을 흥미롭게 여기는 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보다 창의적인 방법으로 책의 기록을 지우고 싶은 욕망은 이후, 1년간 흰개미의 습성과 사육방법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그 뒤 산에서 흰개미를 채집하여 작업실의 고서위로 이동시킵니다. 목재성분의 책 위에서 개미들이 집을 짓고 살 수 있도록 환경 조성을 해주는 일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길게는 3년 동안 흰 개미의 삶이 기록되도록 하였습니다.

개미의 흔적이 기록된 책은 중성화 작업을 거쳐 유리관에 담기면서 ‘발굴된 유물 같은 형상의 조형물’로, 낱장의 기록들은 ‘사진 작품’으로 (여러 크기로 확대되어) 공유됩니다.

책은 인간 세상이 집약된 문명의 산물입니다. Project가 시작되면 흰개미의 집이 지어지는 만큼 책의 기록은 지워집니다. 인간사회에 흰개미의 사회가 이접(離接)함으로써 새로운 역사가 발생하고 쓰여지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개미와 책은 분명 현실의 존재임에도 이 둘의 만남은 초현실이고, 이질적인 만남이지만 한편 완벽한 논리합(論理合)입니다.

사고의 ‘한계’를 넘어서기 때문에 낯설지만 한편, 촉각적 현실로서 생생하게 인지되는 조건(완전체 작품)의 제시 앞에서 우리는 놀라운 상상력의 현실화에 감탄하게 됩니다.

연관성이 전혀 없는 대상이 관계를 맺었을 때 우연하게 생성되는 새로운 에너지는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합니다. 우리가 가장 큰 우주라는 습관적 사고의 틀을 깨고 우주의 일부로써 다른 존재들과 공존한다는 관점으로 이끄는 것이 강석호 작업의 궁극적 방향입니다.

<Trans-Society project>의 산물로서 책 조형물 작업 3점과 대형 사진 작업 2점, 중형 사진 작업 17점 그리고 영상작업 및 작업 노트 등 을 선보입니다.

김도희 작가는 큰 화재로 10년 이상 방치된 집창촌 건물에 들어가 인근에서 얻어 온 걸레로 잿더미와 쓰레기, 고양이 배설물 등을 치우고 닦아냈습니다. 한 달이 넘도록 쏟아낸 행위의 기록물과 흔적을 전시장으로 이동시킵니다. 홍등 아래 잿더미로 덮힌 방을 닦아내는 영상과 닦느라 넝마가 된 수십장의 걸레들, 폐허에서 자라난 나무의 뿌리와 그를 기록한 사진, 고양이가 할퀴고 지나간 불탄 타일과 벽지, 그리고 장판의 일부가 그것입니다. 본격적인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숯이 되어버린 나무난간과 화재 잔해를 모빌처럼 띄워두었습니다.

맨손으로 걸레를 닦는 동안 힘겨움으로 인해 본능적으로 토해내는 작가의 신음소리는 붉은 조명 아래 가녀린 살갗의 손이 움직이는 영상과의 공존으로, 폐허 이전 집창촌을 메우던 소리들을 상기시킵니다. 그렇지만 수없이 닦아서 헤지고 넝마가 된 걸레는 비단 집창촌에 한정되지 않는 메시지로 이어집니다. 삶을 추스르고 이어가는 과정에서 남루해지지만, 그렇다고 추하다고 할 수 없는 숨겨진 삶의 이면에 관한 이야기는 특수한 상황에 머물지 않고 개인의 내면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전시장의 장면을 접하며 분노와 슬픔이 올라오거나 이입이 된다면, 묵혀두고 싶던 어떤 것이 자극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가는 낯선 상황에 자신의 몸을 던져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행위를 자발적으로 감행합니다. 이러한 시도는 일상에서 드러나지 않는 실재에 근접하기 위한 노력이자 인간 보편과 원형을 엿보기 위한 방법입니다. 반면 격렬했을 행위는 담담한 기록과 정제되지 않은 흔적으로 제시되어 더 많은 개인의 내면에서 생기를 얻고 울림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녀는 자신을 직시하는 노력과 시간을 통해 예술이 인간 보편을 공명하는 힘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녀에게 예술은 정제되고 박제되고 덧칠된 물질이 아니라 덧칠된 사고를 깨부수는 고통에서 얻는 몸의 기억이자 몸이 마주하게 되는 생동하는 현실입니다.

두 작가의 작업 결과물은 색채가 전혀 다르지만 극과 극이 만나듯 접점이 나타납니다. <한계와 조건>에 스스로 다가가서 치열하고 치밀하게 행동을 한다는 점입니다. 상당한 시간, 몸과의 싸움을 이겨낸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전율은 바로 그 치열함과 치밀함에 대한 감동에서 비롯합니다.

설계 속에서 우연성에 의한 에너지를 찾아내는 내용과 다분히 촉각적인 성향 역시 공통적인 맥락의 하나입니다.

한치의 빈틈 없는 철저한 몰입으로 이루어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작업들입니다. 완벽한 몰입은 순수함의 증거입니다. 이들의 작품에는 분명 한계를 이겨냄으로써 걸러진 맑은 잔재가 주는 위안이 있으며, 결코 복제할 수 없는 독창성을 구축하는 점에서 진정 존중해 주고 싶은 현대미술가의 태도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Information

+ 전시회: Limit and Condition 한계와 조건

+ 일시: 11월 21일 — 12월 13일 (화~금 — 10am ~ 6pm / 토, 일 — 10am~5pm / 월, 공휴일 — 휴관)

+ 장소: 진화랑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7-35)

Category
2015, Exhibi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