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안나 2011. 06. 25 – 07. 22
임안나 – Restructure of Climax
2011. 06. 25 – 07. 22
절정의 재구성 (Restructure of Climax)
– 미를 놓치지 않은 시뮬라시옹(simulation)
실제 전쟁 현장은 인류의 역사상 최고 절정의 순간(climax)이라 할 것이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극도의 긴장된 순간, 개인과 전체의 운명이 뒤바뀌고, 역사가 새롭게 쓰여 지는 그 순간만큼 절정이란 표현이 잘 어울리는 곳은 없을 듯하다. 헌데 이때의 절정은 그 순간을 넘어섰을 때 도달하는 지점이 황홀경이 아니라 평화수호의 미명 아래 무조건적으로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점에서 긍정과 부정이 미묘하게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따라서 전쟁에 있어서의 절정의 순간은 그 궁극적인 목적이 평화인 반면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파괴감과 처참함으로 인해 평화라는 단어가 무색해질 만큼의 두려움을 상기시키는 모호한 순간(blurred moment)이다.
임안나는 이번 개인전에서 군사무기와 전쟁을 소재로 한 미술적 드라마를 펼쳐 보인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되는 군사 뉴스는 대중에게 전쟁의 위험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를 일으키지만 각 개인의 정치적 입장은 반영되기 어렵다. 반면 전쟁에 관한 영화나 게임 등의 가상현실(시뮬라크르simulacre)은 대중들에게 있어 자유로운 재조합과 감정이입이 가능한 공간으로 기능하면서 현실보다 더 영향력 있는 매체로 존재하게 되었다. 작가는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여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연상되는 드라마틱한 예술작업을 창작해냈다. 작가가 실제 전쟁 앞에서의 무기력함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영화처럼 재구성한 화면은 관객에게도 비현실적인 꿈(unrealizable dream)을 꿀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함으로써 현실이탈의 쾌감(escape from reality)을 맛보게 한다.
임안나는 실제 군사기지와 장난감으로 이루어진 비현실적 공간 모두 그녀가 지휘 제작하는 하나의 영화 세트장처럼 연출하였다. 리스트럭쳐 클라이막스(Restructure of Climax) 시리즈는 실제 군사용 비행기와 탱크에 촬영용 조명을 화려하게 비추는 모습 자체를 담았다. 이는 군사무기가 지닌 엄청난 파괴력과 잔인함을 상기시켜 현실감을 높이면서도 스포트라이트로 인해 아름답게 빛나는 무대의 주인공처럼 보여지도록 한다는 점에서 허구와 비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임안나의 로맨틱 솔져(Romantic Soldiers) 시리즈는 장난감 군인들과 그들이 놓인 공간 전체를 하얗게 탈색하고 상큼 달콤한 과일이나 사탕 등은 실제 크기와 색감을 살려 조합한 장면이다. 생활 속에서 가장 쉽게 소비할 수 있는 대상을 향해 군인들이 잔뜩 긴장한 채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은 실제 군사무기 앞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사소한 대상과의 관계를 전복시킨다. 작가의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대상은 드라마적 오브제(dramatic object)가 된다. 화이트와의 색상 대비와 더불어 무표정한 음식과 역동적인 병정들 간의 표정대비는 전쟁의 두려움과 비극을 잊게 하기에 충분히 흥미롭고 산뜻하며 유쾌하다. 임안나의 자유로운 놀이 속에 빠져있는 순간 전쟁이라는 이슈에서 파생되는 피로감은 잠시 잊을 수 있고, 이는 작게나마 전쟁으로 인한 아픔과 두려움에 대한 치유(healing)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전쟁 후의 육체적 상처를 치료하는데 하얀 붕대를 감는 것처럼 하얗게 탈색된 세상은 정신적 치유를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2011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의 61주기를 맞는 시점에 임안나라는 예술가가 일궈낸 화면은 그만의 미적유희를 통해 전쟁이 남긴 상처로 인한 슬픔과 두려움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시간을 마련해줄 것이다. 이와 함께 임안나의 작업은 현실의 전쟁가능성에 대해서는 엄청난 두려움을 가지는 반면 시뮬레이션을 통해서는 매우 자연스럽게 전쟁에 관한 테마를 즐기곤 하는 대중의 양면성과 전쟁이 지닌 양면성을 함께 자각하게 함으로써 전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의 지평을 열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