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2013. 06. 04 – 06. 25

이상민 – WAVE Sculpture

2013. 06. 04 – 06. 25

 

 

<WAVE Sculpture>

파동을 표현하는 맑은 조각

빛은 사물에 생동감이 돌게 하고, 대상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유리는 빛을 받으면 투과와 반사작용을 동시에 일으킨다. 유리에 금이 갈 경우 표면에는 날카로운 선이 생기고, 그 부분은 투명성을 잃는다. 불투명해진 부분은 빛을 머금기 때문에 빛을 반사하는 면과 극명하게 대비를 이룬다.

이상민의 작업은 유리와 빛의 만남에서 이뤄지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작가는 6cm두께 유리의 한 면을 그라인더(grinder)로 미세하게 연마하여 오목한 공간을 만든다. 그 면을 뒤집어보면 오목한 공간은 볼록한 입체감을 지닌 형상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보게 되는 앞면은 그 형상이 일반 부조처럼 돌출되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편편한 유리다.

육안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의 불일치로 생성되는 착시현상은 주로 시각과 촉각을 동시에 자극함으로써 일어난다. 이상민의 작품은 유연성이 전혀 없는 유리인 점에서 착시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보통 유리는 깨질 때 날카로운 직선형태로 갈라지므로 작품 속 부드러운 곡선의 형상들은 신비롭게 여겨진다. 투명한 공간에 부유하는 형태는 곧 궁금증을 유발하고 만져보고 싶은 촉각적 욕구를 일게 한다.

이번 전시는 이상민 작가의 유리작업 중 부조형태가 시작되었던 2006년부터 현재까지의 작품세계를 아우르는 회고전이다. 작가는 1995년부터 환조와 설치작업을 병행하며 유리의 물성을 탐구 해왔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집중적으로 다뤄온 주제는 물의 파장을 형상화한 것이다. <Afterimage>와 <Mirror Drop> 시리즈는 어린 시절 물 수제비 놀이에서 영감을 받았다. 잔잔한 호수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물의 파장은 이내 사라진다. 파장은 일시적이지만 우리의 기억에는 영원히 남는다. 기억은 곧 지나간 시간이다. 작가는 일시적인 파장의 잔상을 유리에 옮기고 그 시간을 기린다. 이는 곧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자연, 나아가 세상의 흐름을 파장의 형태, 잡을 수 없는 실체의 형태로 표현해낸 것이다.

유리에 거울 알루미늄 액을 입힌 작품들은 실체의 진실에 대한 의문을 더욱 명료하게 드러낸다. 거울은 놓여진 환경의 순간적 장면이 선명하게 담기므로 그것은 진실처럼 보인다. 하지만 매시간 매초 자연과 인간은 그 상을 달리한다. 예를 들어, 숲 속의 한 부분을 거울로 비추면 미세한 바람에도 잎사귀들의 흔들리는 모양이 때마다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의 모습 또한 내면의 감정상태나 외부의 빛을 받는 정도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므로 지금 거울에 비춰지는 모습이 그 실체의 진실이라 단언할 수 없다.

이상민의 작업은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을 은유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의 내면과 외면이 완벽하게 일치한 삶은 불가능하다. 작가는 자신 역시 그러한 것처럼 외면과 내면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과연 진정한 실체는 무엇이라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결국 인간의 실체 또한 물의 파장처럼 결코 한가지 형상으로 묘사될 수 없다. 이상민의 작품에서 형상의 굴곡으로 인해 맻히는 상이 굴절되어 보이는 현상은 무한히 변화하는 존재 즉, 실체를 명확히 밝힐 수 없는 모든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다.

실체에 대한 고민은 사발이 연상되는 그릇 시리즈(2010~)로 발전된다. 내면의 깊이 내지 성향을 비유할 때 그 사람의 그릇이 크거나 작다는 표현이 사용되곤 한다. 이상민은 실제 보여지는 외관과 다를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다양한 모양의 그릇으로 표현한다. 그릇의 다양한 형태뿐 아니라 빛에 따라 드러나는 모습에 차이가 있는 점도 다중적 인격에 비유된다.

작가는 입체감을 만들 때 그라인더 소리로 깊이를 가늠한다. 그라인더로 파낸 깊이에 따라 앞에서 보여지는 상의 입체감이 달라지는데, 유리의 두께가 두꺼울 수록 둔탁한 소리가 나고 얇아질수록 점점 투박한 소리가 감소되므로 이에 따라 형태를 예측하며 완결시켜나가는 것이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주제가 작업과정에서부터 녹아난다.

이상민 작품이 지닌 특별함은 소리로 완성하는 조각, 입체감이 만져지지 않는 부조, 형상의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조각이라는 점에만 있지 않다. 묘한 착시로 명상의 세계로 이끄는 듯한 분위기는 모든 존재에 대해 현물이상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 이것이 폭12mm의 유리에 담겨진 특별한 미학이다.

Information

+ 전시회: WAVE Sculpture

+ 일시: 06월 04일 — 06월 25일 (화~금 — 10am ~ 6pm / 토, 일 — 10am~5pm / 월, 공휴일 — 휴관)

+ 장소: 진화랑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7-35)

 

 

 

Category
2013, Exhibi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