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희 2017. 07. 13 – 08. 20

김도희 – 혀뿌리

2017. 07. 13 – 08. 20

 

 

 

<껍질의 파괴>

한 사람이 인간의 경험과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행하는 시도와 그 일련의 과정/시간들이 그것을 바라보는 다수에게 그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인지의 범위가 실은 제한적이었음을 일깨우는 일. 여기서 발생하는 감각적 울림. 이것이 김도희가 지향하는 ‘예술’ 이자 ‘예술의 기능’이다.

실재하는 존재, 실재하는 삶은 몸 혈관에 흐르는 피처럼, 그 피를 지배하는 생각처럼 보이지 않는 차원들이 얽히고 섥히며 이루어진다. 작가는 이 개념에서 출발하여 다분히 고통스럽더라도 관념적으로만 머무는 것들의 껍질을 벗겨내려는 의지를 갖고, 다소 불쾌하게 느껴질지라도 실재, 존재를 이루는 것들과 마주하는 상황을 만든다.

이번 전시는 작가 작업에 흐르는 의지의 DNA를 이해하기 위한 여정이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정서적 원형’ 을 추적하는 프로젝트이다. 자신의 원형질 즉, 속살을 드러내기 위해 작가는 진화랑의 전시공간을 자신의 몸체로 사용했다.

하나의 공간은 전시장으로 진입하기도 훨씬 전부터 생선 비린내가 진동한다. 다량의 낡은 생선 상자가 분해되어 공간의 한 가운데에 잿더미처럼 쌓여있고, 이를 둘러싸는 벽은 항구가 떠오르는 파랑 유광 페인트로 칠해진 뒤, 그 위로 생선 상자의 나무판이 심전도 그래프가 연상되는 거친 선으로 등장한다. 어슴푸레 동이 틀 무렵, 생선 경매의 시작을 알리는 딸랑딸랑 종소리가 이 공간에 울려 퍼지며 다양한 풍경의 환영이 떠다니기 시작한다. 선원이자 술고래였던 할아버지가 술과 생선 냄새에 절어 집 한가운데에 고래처럼 푹 퍼져 있는 모습, 팔고 남은 생선들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정리하는 할머니의 모습, 생선 경매시장에서 거래 액수를 소리치며 던지는 수신호들, 집 외벽 마다 술쟁이들의 노상방뇨로 얼룩져 습도가 높은 날이면 지린내와 생선비린내가 겹쳐져 냄새가 진동하는 골목길, 그 사이를 어린 김도희가 뛰놀던 모습이 넘실거린다. 그 환경이 김도희 어린이에게는 그로테스크하거나 조금도 이상한 세계가 아니라 심장이 뛰는 동안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던 삶의 단상들이다. 생선 상자의 나무 더미와 심전도 그래프가 유기체처럼 표현되어 있는 이유다.

또 다른 공간은 그라인더로 벽을 갈아냈다. 김도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부산의 ‘깡깡이 마을’은 조선업이 활발했던 동네다. 기다란 막대기에 그라인더를 붙여서 선박의 녹을 제거하는 노동을 보는 것은 그녀에게 일상이었다. 전시장의 벽을 갈아내는 작업은 선박의 녹을 벗기는 행위를 옮긴 것과 같다. 압력의 조절에 따라 지층의 깊이가 다르게 드러난다. 이 행위는 표피를 벗겨내어 속살을 드러낸다 한들 그것이 존재를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은유한다. 피부를 벗기고 벗겨도 그 안에 보이는 혈관이 그 사람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전시장 삼면의 여기 저기를 열심히 벗겨내었을 때 한발 물러서서 보게 되는 전체적인 풍경은 수많은 섬 내지 우주가 부유하는 광경이다. 김도희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드러난 속살의 부분들 뿐만이 아니라 속살을 드러내려고 숨을 헐떡이며 움직이는 그 모습, 그 시간인 것이다.

작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더듬어 보기 위한 과정은 자연스럽게 이 공간의 살갗도 드러냈다. 진화랑의 역사성과 방향성이 김도희의 작업에 의해 조명되는 상황 역시 의미가 크다.

진화랑은 화랑의 전통적 기능에 머물지 않고, 이 공간이 보다 확장된 역할로 나아갈 수 있도록 실험적인 기획의 씨앗을 뿌려왔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노력이 생성한 포용력으로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김도희의 작업은 코끝이 찡해지는 비린내건, 험난한 노동을 떠올리게 만드는 잔해건 모두 우리의 몸과 정신을 압도하는 기운을 지닌다. 우리의 존재가 먼지처럼 느껴지는 광활한 자연 혹은 그를 대상으로 하는 대지미술에서 숭고함의 미적 가치를 잘 느낄 수 있었다면, 김도희 작가를 통해 숭고미를 부여할 수 있는 영역이 광활함과는 거리가 먼, 먼지 같은 삶의 일부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예술 나아가 세상에서 정의하는 특정가치에 함몰되지 않고, 가치의 영역을 자신의 생명을 다해 확인하고 일깨우는 그 의지가 웅장한 미의 한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Information

+ 전시회: 혀뿌리 展

+ 일시: 07월 13일 — 08월 20일 (화~금 — 10am ~ 6pm / 토, 일 — 10am~5pm / 월, 공휴일 — 휴관)

+ 장소: 진화랑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7-35)

Category
2017, Exhibi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