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화 2016. 02. 13 – 03. 12

양정화 – UNEASY FIGURE

2016. 02. 13 – 03. 12

 

 

 

열린 결말이 주는 자유

양정화 작가의 작품 앞에 서면 슥삭슥삭 소리가 들린다. 선이 오간 거친 흔적이 생생해서 그녀의 손이 움직이는 동안 소리 나는 장면이 떠올려진다.

야성의 직선이나 밀도 있는 선이 중첩되면서 형성된 짙은 면은 강인한 경계를 만들고, 힘을 뺀 선들의 중첩은 더없이 부드러운 곡선과 면이 되어 경계를 사라지게 만든다.

경계 있음과 없음, 직선과 곡선, 선과 면의 교차는 먹의 농담 조절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흑과 백 간의 스펙트럼을 펼치며 리듬을 분출한다.

작품에 나타나는 형상은 모두 사람이나 동물 몸의 일부가 접히거나 맞닿는 지점을 확대한 것으로 그 동적인 굴곡들로 인한 생동감,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운동감 역시 리듬을 배가시킨다.

몸체 어디인가를 포착한 화면은 더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사라지는 실체를 실감하게 한다. 분명히 알듯 하면서도 동시에 연상작용이 활발히 일어나 이 형상이 무엇인지 단정지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이로서 발생하는 묘한 여운이 바로 양정화 작품의 핵심이다. 작가는 ‘이것은 팔꿈치이다.’ ‘구부러진 무릎이다’ 식으로 특정한 무엇을 지칭하거나 공식에 가두려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 상상으로 이끌어 주고자 한다. 흑백을 선호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채색은 지나치게 설명적이거나 구체적이어서 작품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반면, 무채색은 어렴풋하고 암시적이어서 보다 은유적이다.

양 작가는 목탄, 콩테, 오일스틱 등의 드로잉 재료만을 사용하여 흑백의 화면을 15년 넘도록 구사해 왔다. 소묘재료는 흑백이라는 최소한의 제시만으로 뇌리에 무엇을 인지하게 하고, 그 위에 어떤 생각도 기술해 볼 수 있는 여백을 주기 위해 선택되었다.

마치 첫 장 첫 줄에 글 한 문장만을 제시해 준 노트를 선사 받는 느낌이다.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에서 명저를 남긴 문학가 포레스터가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할지 몰라 하는 학생 자말에게 첫 문장을 제시해 주고 그 뒤로 자말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그의 문학적 재능이 드러나는 내용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고양이를 키운 후부터 양 작가의 화면에는 인체의 부분들과 함께 고양이 몸체의 부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체의 어느 곳을 떠올리고 있던 중 옆 캔버스에 고양이의 눈이나 꼬리가 나타나면 갑자기 내가 본 것이 인체가 아니었나 하고 혼란스러워진다. 한쪽에는 사람 피부의 털만을 상기시키는 롤페이퍼 작품이, 그 옆에는 고양이 털이 담겨진 액자가, 뒤로는 손과 발을 조형 캐스팅한 작업이 벽에서 미라처럼 등장하고, 몸체끼리 맞닿았을 때 생겨나는 그림자가 지배적인 대형 캔버스가 공존하는 상황이 전시를 이룬다.

이번 전시는 이처럼 물음표가 더욱 많이 달리도록 구성하여 연상의 폭이 확장되는 순간의 경험을 강조한다.

이전보다 훨씬 곡선의 조형성이 두드러진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연상적 사고를 한층 더 유연하게 한다.

양정화 작가를 통해 색을 배제하고도 충분히 흥미로운 리듬에 몸을 맡길 수 있는 흑백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

Information

+ 전시회: UNEASY FIGURE

+ 일시: 02월 13일 — 03월 12일 (화~금 — 10am ~ 6pm / 토, 일 — 10am~5pm / 월, 공휴일 — 휴관)

+ 장소: 진화랑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7-35)

 

Category
2016, Exhibitions